ART & CULTURE

이종섭 초대전, 열어보다 - 금보성아트센터

Grandpassion 2017. 12. 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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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초대展 - 열어 보다 / 금보성아트센터 / 2017. 12. 02 - 12. 14 / 서울시 종로구 평창36길 20



LEE JONG SUB EXHIBITION - 열어보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들을


이종섭 개인전에 부쳐 ‘열어보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들을 - 주성열(예술철학, 세종대)

프롤로그 : 전시 개요

이종섭은 개인전 컨셉을 ‘열어보다’로 결정했다. 작업 중인 자료를 중심으로 작업 여정을 관람자에게 공개하기로 한 것인데 정식으로 완성된 작품은 물론 정리되지 않은 작업의 일부분도 방문자들이 열어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작품 재질의 특성상 감상자가 직접 포장된 상자를 열어서 보기에는 적잖은 위험이 있어 미리 몇 개의 자료와 포장을 열어놓고 관객을 맞이할 것이다.

무거워서, 버거워서 던져버렸다 - 찌찌찍 1085 X 1525 X 10 / 철 / 2013

‘열다’라는 말의 의미는 개봉하여 공개하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완성되거나 열매가 잘 익어 있음의 뜻도 포함한다. 따라서 ‘열어서 보여주기’는 이미 완성되어 보관 중인 작품을 공개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열매가 맺힌 것과 작가의 의도로 완결된 작업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노력의 한계가 극한까지 갔음을 확인하고 저절로 한숨이 나올 것이다. ‘열다’라는 또 다른 의미처럼 함께 마음을 열어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의 작업은 종이와 붓 대신 두꺼운 철판과 절단용 토치로 이루어진다. 쇠는 속성상 일정한 불의 힘이 가해졌을 때만 작가의 의도와 상응하는 다루기 어려운 매체이다. 작은 불꽃을 바라보며 감각을 통해 엿가락처럼 철판을 가르고 녹인다. 단단하던 철판이 그의 끈질길 열정 앞에서 부드러운 자세를 취하는 순간 원하는 형식으로 작품이 완성한다.

작품 세계로 들어서며


짜잔 1 340 X 250 X 18 철판 / 2013

작가 이종섭은 2007년부터 붓이 아닌 용접기를 들었다. 그림을 잠시 접고 서예를 배우기 위해 대전으로 터를 잡고 5년간 글을 쓰고 난 후 10년만의 일이다. 육중한 현실 앞에 먹으로 화선지를 가르듯 용접기로 글씨를 쓰고, 절단용 토치의 강한 불로 철판을 가르고 면을 갈랐다. 사각형 철판을 자르거나 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두꺼운 철판을 면으로 나누고 유기적인 선의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적당히 굽히고 젖히면 구체적인 삼차원의 형상이 공간 속에 힘의 균형을 잡아 펼쳐진다. 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잘라 입체 형상을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중국의 종이공예인 ‘전지’와도 유사하나 그의 작업은 버려지는 면 없이 모든 면이 펼쳐지는 입체 조형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자신의 작품이 언어처럼 공유의 가치를 가지고 모든 이들에게 이해되고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근작의 대부분인 철판 작업이나 판화 그리고 드로잉은 ‘그림문자(pictogram)’ 형식을 취했다. 80년대 초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 진학과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공부로 소비했던 까닭에 이제 자신의 경험과 한국적인 사유의 틀이 함축된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기를 원하는 듯하다.

훠이훠이 430 X 350 X 18 / 철판 / 2013

그림 문자 혹은 미토그램(mythogram)

이종섭 작업의 중심은 픽토그램(pictogram)처럼 자신을 닮은 형상을 추출하고 그 이미지를 반복하거나 확장하고 연장한 언어 조형에 기반을 둔 문자적인 작품이다. 이미지의 탄생 이후에 나타난 문자의 발명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직접적인 체험에 기초한 그림이자 원초적인 인간의 언어인 그림문자라 불리는 픽토그램(pictogram)이다. 태초에 인간은 말과 글 그리고 그림이 하나였던 바벨탑 이전의 언어인 ’아담의 말‘을 사용했다고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이종섭의 작품들도 ’아담의 언어‘처럼 그림과 글이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짜잔 3 450 X 350 X 18 / 철판 / 2013

상형문자의 구조는 사물과의 연관성이나 의미로서의 관계성에 근거하고, 흉내 내기와 닮아 있음에서 출발한다. 사물 특성의 조합과 변별을 통해 의미가 만들어지는 상형문자의 기호와는 다르게 표음문자인 한글이나 알파벳은 상징적인 언어이므로 사람들은 약속을 통해 소통을 대신한다. 그래서 약속된 자의적인 언어기호가 나타나면서 말과 사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짜잔 2 2240 X 380 X 18 / 철판 / 2013

보편의 언어이자 불후의 언어인 상형문자는 이미지와 문자의 공유인 서술적 이미지가 원형이다. 작가가 관념을 해체하고 얻은 이미지는 자연만물과의 조응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 ‘아담의 언어’이다. 


갇혀있는 순수한 언어의 관념을 물질로 만나 조형 이미지화 하는 작품의 구조는 미토그램(mythogram)과 유사하다. 이는 신화적인 일정한 양식으로 구조화된 이미지나 선사시대의 형상이미지와 닮은 표의문자에 가깝다.


문자 기호의 발명은 현실을 추상화하고 이미지와 문자를 분리시켰다. 반면에 도상텍스트(iconotexte)는 글과 조형적 요소의 총체성을 의미하며 감응을 통해 새로운 체험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무쇠로 형상화한 작품의 촉각성에 주목한다. 삶이 진정성을 회복하면서 건조한 이미지는 촉각적인 형상으로 되살아난다. 

살아온 날이 만들어 준 문자는 또 다른 기억의 응어리를 표상하는 작업으로 촉각적 공간을 차지한다. 촉지적 감각을 통해 지각된 것은 해석도 번역도 필요하지 않다. 작품은 스스로 균형을 잡고 있으면서 조금만 힘이 가해져도 출렁거리는 특성이 있다.


주름, 함의(implication)와 전개(explication)


함의(implication)와 전개(explication)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종이 작업에서도 주름(pli)이 펴지고(ex-pli) 접어지면서(im-pli) 감춰지거나 드러나는 현상을 재현한다. 주름은 온전한 형상을 숨기고 일부만을 보여준다. 펼침은 감춰졌던 이미지가 드러나기도 하고 반대로 빈 공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도의 주름이 생명을 영속시키듯, 아코디언의 주름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그의 작업은 주름과 펼쳐짐의 상호작용에 의해 의미가 전개되거나 잠재되기를 반복한다. 불교의 가르침으로 말하자면 ‘一卽多 多卽一’로, 하나는 만물이고 만물은 하나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주름’은 영혼의 모습이며 잠재적이고 현실태를 갈망한다. 그리고 신체라는 선택을 통해서 현실화 된다. 지각은 영혼의 영역에서는 애매하지만 신체의 구조에서는 선명하다. 영혼은 신체를 통해서 현실화하는데, 지각을 통해 애매함과 선명함이 드러난다. 이는 주름이 펼쳐지는 모습이다. 한 장의 철판에는 무한히 많은 주름의 잠재태가 있다. 이 잠재태는 선택 혹은 포착을 통해서 생성으로 나아간다. 접힘은 그 형태가 드러나는 펼침 혹은 설명(ex-pli)이다. 이것의 영혼 즉 주름으로 가득 찬 단자이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세계를 가지고 표현하고 담고 있다.


무쇠 덩어리 속에 갇혀 있던 특유한 힘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솟아오른다. 영원토록 저장되는 물질에 저장하는 것이다. 무쇠와 문자가 지닌 감각을 종합하고 우리에게 그 감응을 제시하여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작품은 작가의 에너지를 변화시키고 작가는 또 다른 힘의 방향을 ‘미학’적으로 조종하고 있다. 이종섭의 언어들이 상호교섭하면서 만들어내는 어울림과 리듬이 조화로운 힘을 만들고 ‘옹골진’ 희망의 씨앗을 잉태한다.


세상과의 접속으로 다양체를 만들듯 그는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작가 자신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변화되고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삶의 여정에서 무언가와 접속하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건은 곧 내가 가야할 방향과 목적을 다시금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또 다른 사건과 접속되면 새로운 방식으로 또 다른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들뢰즈의 리좀의 가치를 분석하고 사유화하여 재현한 듯한 그의 작품은 뿌리가 있고 나무줄기와 가지가 있고 거기에 잎이 있는 수동의 사유 방식인 수목형의 구조가 아니라 접속에 따라 다양체를 형성하는 변화무쌍한 삶의 여정을 구체화한다. 잠재적인 가능성이 현실과 만나 가능성으로 바뀌는 것은 나무에서 열매가 맺는 방식과는 다르다. 인간의 삶은 나무처럼 수동적이지 못하다. 언제나 위태로운 방식으로 현실과 마주하고 능동적인 대처로 변화무쌍함을 구축한다.

철판을 가르고 다듬는 이종섭은 기억을 추상화 해내고 철과 불에 대해서 동일한 파동을 느끼면서 깊은 상상을 한다. 사물을 자기 안에 사무치게 만드는 작업이 녹녹하지 않았겠지만 언어의 현실이며 인간의 현실이기도 한 형식과 내용이 성공적으로 만났다. 예술작품은 감각적 존재이며 재료 또한 감각적인 질감을 가지고 있는데 무쇠판을 가르고 펼쳐 새로운 감각과 감응을 주고 있다. 독창성은 그것이 출발했던 상황의 약점이나 혹은 그보다 더 작은 것에서 얻어진다. 함석헌은 한 마디의 말, 한 줄의 글을 위해 천 마디의 말과 백 줄의 문장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단단하고 단단한 매체 철판을 재료로 하는 작업은 실로 놀라운 일이며 더구나 모든 작업과정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니, 그 고단함을 짐작조자하기 어렵다. 10cm 두께의 철판을 절단용 토치로 가르고 달구어 형태를 만들어 가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실험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도 몇 차례 겪었는데 운이 좋아 살아남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란다. 그는 쉬지 않고 드로잉, 철판 가르기, 종이 가르기와 자르기, 스프레이 페인트 드로잉, 붓글씨 등을 수련하며 차분하게 정진하고 있다.


2009년 이종섭의 첫 번째 프로젝트 : 나 그리고 대한민국(I & KOREA project)

.... ./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 / 점점 부풀어 오르게 / 잠이 잠처럼 풀리고 /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 ..... - 진은영의 시 <물속에서> 중에서 -


‘반야심경’, ‘주기도문’, ‘국민교육헌장’의 문자들을 견고한 매체에 새겨 넣기 위해 2007년부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걸고 대장정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2년에 걸쳐 첫 번째 프로젝트인 <반야심경>의 작업을 완성했고 2009년 10월 14일 조계사 경내 설치도 이뤄졌다. 이 작업에서 위험하고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경구를 남겨야 한다는 것과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문자숭배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하여간 그의 작품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인류의 문화유산처럼 남아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사람이 만든 것 중에서 상징성이 가장 강한 문자를 변하지 않을 쇳물로 새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자의 의미는 청각적 기호로서는 변하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시대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증식되고 조정된다. 청각적인 기호로서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가부좌를 튼 동일한 자세로 앉아 이를 봉송하는 기표는 동일하지만 의미와 해석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경전 안에 있는 것이 절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은 아니기에 경전 밖에 존재하는 게으름이나 거짓말에도 소박한 삶의 철학이 있다. 인간의 삶을 안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경전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누구든 삶을 허망한 욕망이나 장식으로만 이해하고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는다면 믿음과 교의가 붕괴하고 찌꺼기만 남을 것이다.


이종섭은 캘리그래피(calligraphy) 영역에서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감각적인 글씨를 만들어 낸다. 글자는 하나의 이미지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는 아름다운 조형언어이다. 디지털 문명화 과정에서 활자시대는 문자시대로 전환되었다. 디지털 타이포그래피의 시대에 문자 사용자는 자신만의 문자 표현적 의지를 반영할 수 있다. 캘리그램은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텍스트로 읽고, 귀로도 듣는다. 캘리그램에서 기표는 형태를 취하고 조형적인 리듬을 만들며, 조형적 양상을 지각하여 의미를 파악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언어적 표상체계와 회화적 표상체계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그림들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양식을 제시했다. 그리고 파울 클레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넘어 심오한 리듬과 색채를 혼융하여 알파벳이 독립적이고 고유한 존재 형태로 표현되도록 했다.


영어 알파벳은 선조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공간의 구성이 필요 없다. 그러나 한글이나 한자(漢字)는 모아쓰기에 필요한 바탕공간이 필요하므로 문자 조형성이 발생한다. 바탕공간에 낱자들이 모여 한 글자를 만드는데 이 낱자들 사이에 조형공간이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글의 시각성과 잠재적 문자 조형력 또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므로 문자문화의 미래를 포함하는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한글의 모아쓰기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문자 표현적 특성으로 한글의 상형이미지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사실 경전은 풀 한 포기에도 있다. ‘一微塵中含十方’ 티끌이 온 우주를 담고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도 떠오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그들만의 경전을 지니고 생명을 유지한다. 소를 끄는 촌로의 ‘이랴이랴 어뎌어뎌 워워’의 내뱉는 말도 농사꾼에겐 어떤 경전보다 소중하다. 아이를 안고 달래거나 어르는 부모의 ‘까꿍, 까꿍’이나 아기를 향한 ‘어화 둥둥’의 감탄사는 아기에게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서를 함양하는 둘도 없는 중요한 경전이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찌우는 경전 속의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언어이거나 말장난일 뿐일 수도 있다. 경전보다 더 경건했을 세상 밖으로 뱉어진 말들이 노동의 현장 혹은 시장판에서는 무시되었을 테고, 시대나 상황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삶 밖의 다른 말들이 더 이상 필요할까. 진정한 삶은 경전보다도 더 깊은 삶에서 발견된다.

필자는 이종섭의 첫 번째 프로젝트 <반야심경> 작업은 글자마다의 조형적인 특성이 너무나 특별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새겨진 문자는 경전의 일부가 아니라 불같은 쇳물이 엉겨 붙어 감탄할 만한 조형성을 이루고 있다. 투박하면서도 강인한 힘이 내재되었고 순박한 모양새에는 글의 진정성이 묻어 있다. 글을 보고 있노라면 경전의 내용이 뭣이 중한가 싶어진다. 이종섭은 3개의 프로젝트를 삶과 현실 그리고 나와 우리를 성찰하는 작업이라 언명한다. 그는 이 언명을 통해 평범한 경구의 가치를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기를 당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동시대인들에게는 성전이나 보편적인 규범이 유명론처럼 이름만으로 남지 않길 바랄뿐이다. 아직 남아있는 이종섭의 프로젝트 ‘주기도문’은 명동성당에 설치되기를 기대한다. 1968년에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은 박물관에 전시되기를 열망한다.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경전을 통해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보자는 것이 보편의 가치를 통해 삶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문자와 글의 가치는 다르다. 소쉬르가 말하는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의 차이처럼 문자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되지만 글은 다양한 의미가 확장 가능하다. 기표가 음성적인 기호라면 그가 쇳물로 집적한 문자는 시각적인 기호이다. 그것이 모인 글의 기의로서의 가치는 시간과 환경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소통될 것이다.

사용하는 매체의 성격에 따라 문화의 가치가 달라진다.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 돌을 매체로 한 고대 이집트는 영원불멸의 사상이 지배했었다. 파라오는 돌무덤에 안치되었고 그의 삶의 행적은 돌에 새겨 남겨졌다. 돌에 새겨진 그들이 추구했던 종교적인 가치는 몇 천 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으나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소멸하게 된 것이다. 이후 양피지와 종이의 발명으로 인류의 지적 유산은 새로운 가치를 담으면서 시간의 영속성보다는 공간 확산의 가치를 중시하게 되었다. 이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 되면서 종이는 새로운 매체에 의해 소멸될 위기에 있다. 이종섭의 작품이 디지털 시대와 소통하기 위해선 어떤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이종섭의 남겨 놓은 이야기

대학을 입학하기 전 그림 수업은 거의 독학으로 이뤄졌다.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그림 수업을 받았으나 그의 학부시절의 작품에 대해 교수들 중 누구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고, 그런 이유로 역량을 발휘하거나 충분한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당시 대학에서는 모더니즘이 유행하고 있었으나 구상계열 작업을 주로 추구하던 교육방식 탓에 학생들의 여건은 개방적이지 못했다. 몇몇은 모사를 기본으로 하던 수업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개인 작업실에서 실험적인 작업으로 밤을 지새우며 작품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종섭도 그 중 하나로 다양한 실험을 기반으로 학부 수업과 병행하여 내일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는 대학원 입학 후 틈이 나면 동안 전국을 뒤지 듯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아다닌 적이 있다. 소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간직하거나 문화적 유물이 있을 법한 장소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곳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자료를 찾고 유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크기를 측정하고 상대적인 차이를 몸으로 확인하고 다녔다. 선조들의 삶의 흔적과 한국인의 정신적 가치를 체득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남겼다. 이렇게 빼곡히 쌓인 슬라이드 필름들은 깔끔하게 보관되어 한 번도 함부로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적인 없다. 금전적인 가치를 고사하고도 수집광처럼 그렇게 모아 놓은 것들에서 그의 성격이나 태도 그리고 얼마나 물심양면으로도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으자 으자 380 X 340 X 18 / 철판 / 2013

추상적인 관념이나 책을 통해 얻어내는 지식보다는 직접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몸으로 체득하고 각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육안으로 할 수 있는 확인을 넘어서서 자로 재고 높이를 측정하는 등 직접 몸에 각인하는 그의 태도는 실증적인 방식으로 존재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오감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도요지를 찾아 깨진 도기를 모아 숙소에서 깨끗하게 세척하는 과정에서 손의 감각으로 익히는 과정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눈으로만 보아도 그 도기가 어떤 도요지에서 만들었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전문가들이란 실체적인 사물보다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설픈 생각만 채워진다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시네마 천국에서 어린 시절

그는 어린 시절 시네마 천국의 아들로 성장했다. 5, 60년대 초에 충청남도 당진이라는 곳에서 영화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기에 궁금했는데 조부와 부친이 영화 마니아 이었단다. 영화는 어린 시절 꿈을 확장시키는 좋은 매체였을 것이다. 안방 벽에서 펼쳐지는 영상 이미지들은 신비로움과 환상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사기의 기계 소리도 껌벅거리는 빛의 움직임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영상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체험은 신비로웠을 것이다. 간혹 영사기에 필름이 걸리는 문제로 잘려나간 필름을 가지고 반복적인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어린 작가에게는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이 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조부와 선친의 취미로 빅터(Victor) 축음기로 다양한 음악을 들었고, 그 음악적인 정서는 그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쁘게 생각한다. 작업을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로서 작가의 지난 추억은 좋은 소재가 된다. 1991년 당진에서 개최되었던 설치와 행위를 위한 개인전에서 이 모든 경험들을 실연했던 기억이 있다. 걸프전이 벌어졌던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근본은 공동체의 지난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는 일처럼 보였다. 프로젝터를 통해 비춰지는 이미지들을 감상하면서 바닥에는 막걸리를 가득 채운 자배기와 사물놀이 그리고 김수철의 국악음반이었던 <황천길>과 최종실의 공연실황 녹음을 배경으로 흥겨움이 더해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흥에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남북문제의 시를 낭독했고 촛불을 하나씩 끄고 암전이 되면서 ‘우리는, 어디서...’라는 삶의 문제들을 의문으로 남기고 막을 내렸다.


나가면서

긴 여정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할 말을 다한 것은 아니다. 이종섭 작가는 참으로 많은 작품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도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도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정말 부지런한 예술가다. 욕심이 많아 주변 사람들에게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작업에 관한 말이 시작되면 무슨 이야기들이 저렇게 많은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주체할 수 없이 감추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몸으로 터득한 경험들과 사유의 깊이로 말의 내용도 만만치가 않다.

사실 아름다운 것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의 소박함과 단순함이다. 완성된 것은 흔적을 감추고 단순함과 소박함도 가려진다. 이종섭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는 사회적 제약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이종섭은 공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객과 함께 누리고 공유하는 작업을 추구한다. 이미 조계사 앞에서의 설치 작품 <반야심경>을 통해 방문객들과 작업을 공유했던 경험도 있다.

그는 아날로그 작품으로 디지털 사유방식을 넘나든다. 그러나 디지털의 사유란 것도 알고 보면 동양의 정신적인 사유방식이다. 그는 결국 한국적인 사유방식으로 디지털 세계를 만난 아날로그의 세대인 것이다. 물론 디지털의 사유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 지식인이 동양에 눈을 돌리는 이유가 디지털 사유의 정신적인 가치를 동양 철학에서 발견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선사상이나 불교사상은 들뢰즈의 철학과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영화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당대의 멋쟁이였던 조부와 선친의 댄디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선친이 지녔을 법한 자세와 말솜씨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한동안 몰두했었던 서예는 자신에게 심혈을 기울였던 시간이었다. 평생 거쳐야 하는 몰입 자세와 태도 등의 체득을 통해 수행자의 자세도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는 특별한 수도승처럼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 혹독한 고행을 안고 있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작품을 대하면 충분히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혹은 우주적인 확장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전시를 마치면 작가 이종섭은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철판위의 고기를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를 만나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유이강(柔而剛)’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돌이 하나하나 얹혀 지고 그 징검다리 돌을 지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를 기원한다. 작가 이종섭의 마음에 빅터 축음기 나팔관에서 1955년에 부른 명국환의 옛 노래이자 작가가 서너 살적에 종알종알 잘 불러서 선친이 기특해 했다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지금도 그는 광활한 세상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


낮과 밤을 만드는 곳, 문을 열고 어제를 들고 나간다. 2017. 12. 2. - 열어본다


내가 쇠를 이렇게 잘랐다는 대견함에 "참 잘했어요"를 수도 없이 외쳤다.



손바닥이 아프다 565 X 610 X 11 / 철판

서툰 망치질에 너무 진지했다. 그 때는 통증이 다른 것들을 잊게해주었다. 나를 치유해 주는 줄로 알았다.





어릴 적 나는 무척이나 장난을 좋아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내일은 무얼 하지?"





생각만 해도 온몸이 자지러지는 기대감에 왜 이렇게 밤은 더디만 가는지 빨리 날이 밝았으면 하다가 아침이 되면 천근만근이 된 몸뚱이가 어머니 부르는 소리에 "5분만 더 - 10분만 더 -"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근래에 이르러서야 "그 5분"에서 겨우 벗어났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었을까?
이유모를 충만함에 거칠 것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머릿속에서는 째각 째각 소리가 났다."






내가 작업을 마치고 들어가는 시간은 대개 자정이 넘었다. 


어떤 때는 새벽 서너 시쯤 되는 날도 많았다. 살그머니 문을 열어보면 코를 고시며 주무시는 아버지 옆에서 어머니는 성경을 필사하고 계신다. 중얼 중얼 누구랑 대화하듯 한 구절 읽고 한 구절 쓰시는 모습이 사뭇 귀여우시다. 한 땀 한 땀 자수를 하듯 쓰신다.


안쓰러운 듯 쳐다보시는 어머니의 눈 속에는 까만 하루가 담겨있다. 죽 한 공기 따듯이 데워 주시고는 그제야 잠자리에 드신다. 아주 늦는 날 -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돋보기 쓰신 채 그 작은 앉은뱅이책상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계신다. 우리 어머니도 매일 드로잉을 하신다.


내가 내가 될 수 있을 때 까지 곁에서 지켜주신 어머니께 이 전시를 바칩니다.



발가락이 간지러워 웃을 수밖에 없네 - 꼼질 - 1530 X 1070 X 100 / 철판 / 2014



이종섭 초대 - 열어보다
금보성아트센터 
2017. 12. 02. - 12. 14.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
T - 02-396-8744

이종섭
세종대학교 회화과졸업 서양화 전공, 동대학원 미술학과졸업, 개인전 4회
작업실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884번길 70-5
이메일 : 2008ljs@naver. com



An JONG SUB LEE 이종섭 Exhibition on view in KIM BO SEONG ART CENTER 금보성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