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설렁탕의 설은, 임금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낸 뒤 백성들과 함께 소로 끓인 탕을 나눠 먹었다. 선농단에서 먹은 탕이라고 해서 선농탕이라 불렸고 그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기원이라는 설과, 곰탕의 곰은 '푹 고았다' 고 하여 곤탕이라고 불리다가 곰탕이 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설은 몽골에서 유래된 음식이라는 것이다.






곰탕과 설렁탕 유래는 몽골이다?



곰탕과 설렁탕의 유래는 몽골이다


조선시대 영조 때 간행된 몽골어 어학서 몽어유해에 따르면 몽골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어 끓인 것을 한자로 공탕이라 적고 몽골 발음으로 "슈루"라 읽는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공탕이 곰탕이 되었고, 슈루가 시간이 지나면서 설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기를 먹는 문화가 몽골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 통일 신라부터 고려까지 불교국가라서 육식이 쇠퇴했던 시기 그러다가 몽골의 침략 이후 약 200년간 우리 땅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몽골의 육식 문화가 전해진 것. 그래서 몽골 유목 민족의 음식 문화가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곰탕과 설렁탕의 어원은 몽골의 공탕에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통 학회에서는 이 설을 정설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문헌에 따르면 우리의 곰탕, 설렁탕과 몽골의 슈루는 레시피가 완전히 다르다. 몽골의 공탕은 큰 솥에다가 소2마리, 양이나 염소 12마리를 넣고 끓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기는 잘게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음식이리고 전해진다. 고기를 끓여서 먹는 방법만 비슷하다. 


문헌 속에 등장한 공탕 레시피는 몽골 군사들의 군사 식량일 것으로 추측. 전쟁을 치르면서 대규모 식사를 준비하는 스케일 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우리도 1940~1950년대까지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끓여 먹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 당시에는 소의 모든 부위 머리. 다리. 도가니, 내장 등등을 다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냄새가 많이 나는 부위, 특히 소머리와 내장 등의 부위들을 빼내면서 소의 뼈와 살코기 사태나 양지를 넣고 끓이는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는?


■ 곰탕은 사태, 양지 등의 살코기와 소량의 뼈를 넣고 우려낸, 뼈가 조연인 것이 곰탕이고, 

■ 설렁탕은 사골과 소머리뼈 등 잡뼈와 소량의 살코기를 넣고 푹 곤, 뼈가 주연인 것이 설렁탕이다.


그러나 원래 곰탕과 설렁탕은 같은 음식이다. 이런 음식을 두고 어떤 사람은 곰탕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설렁탕이라고 하다가 1940년대 들어와서 뽀얀 뼈 국물을 설렁탕, 맑은 고깃국물을 곰탕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우리 일상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식당에서의 변화일 수 있다. 식당의 입장에서 설렁탕 보다는 곰탕이라고 하는 것이 왠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푹 고았다는 곰탕의 단어가 소뼈보다 귀한 소고기를 우려낸 맑은 국물 음식, 곰탕으로 분류돼서 현재도 곰탕이 설렁탕 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사골은?


■ 사골은 소 다리, 우족을 제외한 소의 다리뼈인데 앞다리와 뒷다리 중 앞다리가 골밀도가 높아서 더 질이 좋고 맛이 좋으며 가격도 더 비싸다. 이것은 소의 무게 중심이 앞다리 쪽에 쏠려있으므로 앞다리 쪽의 근육과 뼈가 뒷다리 보다 상대적으로 더 튼튼하고 강하기 때문이다.


사골을 너무 많이 재탕하면 국물이 쓴 맛이 난다. 한 번 끓이는데 3~4시간을 기준으로 3번 정도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 이상 끓이게 되면 쓴 맛이 우러나게 돼서 맛이 없다.



- 출처 tvN 수요미식회


평소에 생각 없이 기운 빠질 때 맛있게만 먹었던 음식인데 이렇게 알고 보니까 음식의 탄생에도 많은 비밀이 숨어 있네요! 몽골의 전쟁 속에서 대규모 군사들을 먹이기 위해서 생겨난 음식이라....! 전쟁 속에서 생겨난 음식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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