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 George Soros 1930년 8월 1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런던 정경대를 졸업

조지 소로스는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주범 아닌 주범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은행까지 굴복시킨 헤지펀드의 대가이다. 짐 로저스와 동업을 하면서 퀀텀펀드를 세계적인 헤지펀드로 확대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이자 현대 금융사의 신화적 존재이자 진정한 이 시대의 과부 제조기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 2011년 7월 25일 81세의 나이로 펀드매니저 은퇴를 발표했다. 물론 그가 투자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투자금을 모두 투자자들에게 돌려준 후 가족 펀드(개인 재산)의 형태로 여전히 자금을 운용 중이다. 2015년 중국 버블 붕괴로 소로스의 가족 펀드(개인재산)에서 대규모 손실을 봤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워렌 버핏과 동갑이며, 각국의 경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제3세계 국가의 빈민이나 민주화 운동가들을 돕는 양면적 행보 때문에 사악한 구세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7년 IMF 사태 당시에는,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통화 폭락의 주범으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던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김대중 대통령 때, 김대중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일에 호감을 보이며 투자 요청을 승낙, 1999년부터 본격적인 한국 투자 행보를 시작했다.



펀드매니저가 되기까지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변호사였던 아버지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나치가 유럽을 장악하자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았다. 이후 1947년 동구가 공산화되면서 런던으로 이주. 런던 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복수 전공으로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칼 포퍼 밑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52년에 졸업했다. 소로스는 평생 자기를 포퍼의 추종자이자 제자라고 소개했고 실제 포퍼가 만든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당연히 포퍼는 갑부가 돈을 대 주니 좋아했지만 실제 소로스가 돈을 번 방법 자체가 자유 경제 체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포퍼를 난감하게 하는 방법들이었기에 애써 좋아하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소로스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철도역의 짐꾼, 여행 세일즈맨, 은행의 수습사원으로 어려운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리고 지금이야 손꼽히는 갑부이고 악마 같은 헤지펀드계의 대부로 알려져 있지만 소로스 본인이 돈을 벌기 위해 펀드매니저계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런던 정경대에서 심취해 버린 철학을 공부하는 데 경제적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스스로 나중에 포장을 위해서 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소로스가 펀드 매니저로 뛰어들 때 그가 목표했던 액수는 50만 달러로 이 정도면 철학 공부하는 데 밥걱정 안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 이 업계에 뛰어들고는 전설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참고로 2010년대 그의 기부금이 5억 달러다.


졸업 후 몇 년 간 고생을 하다가 런던에 있는 한 투자은행에 수습 사원으로 취직하면서 금융업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1956년 미국으로 이민 간 소로스는 리서치 헤드 일을 하면서 뛰어난 주식 종목 선정 능력으로 월가에 자리를 잡아갔으며 1969년 4백만 불 규모의 작은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면서 펀드매니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 스타일의 롱숏 전략을 사용하며 소로스는 탁월한 투자 감각과 재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으로 훌륭한 성과를 냈다.


1973년, 소로스는 짐 로저스와 함께 그의 역사적인 헤지펀드인 퀀텀 펀드(Quantum Fund)를 설립하면서 자신의 투자 인생의 본격적인 막을 올리게 된다.



헤지펀드의 신화, 파운드화의 공매도


1990년, 영국은 유럽 내 단일 통화권 구축을 위해 만들어진 과도기적인 체제인 ERM(환율 조정 메커니즘)에 가입한다. 이에 따라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 대비 상하 6% 밴드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고정이 되었고 밴드에서 벗어날 정도의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영란은행이 즉각적으로 개입해서 파운드화 가치를 안정시킬 의무가 생겨났다. 


같은 해 독일 통일 이후, 독일은 동독 발전을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게 되고 막대한 화폐가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분데스방크(독일 연방은행)는 2년 동안 10차례나 금리를 인상하는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 자연히 마르크화는 강세를 나타냈고 파운드화의 가치를 밴드 내로 유지하기 위해 영란은행 역시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독일만큼 튼튼하지 못했던 영국 경제로 인해 실업률은 두 자릿수까지 치솟았고 경기는 얼어붙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대영제국 영국은 ERM 탈퇴 대신 영란은행이 열심히 파운드화를 매수하며 파운드화 하락을 방어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소로스와 드러켄밀러를 비롯한 영민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파운드화의 공매도에 나섰다. 이번에도 자존심 강한 영국은 단기금리를 10%로 인상하며 파운드화 방어에 나섰으나 시장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항복, 1992년 9월 16일 ERM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파운드화는 수직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결국 패배한 영국 정부는 유로화 전환을 포기했다. 이러한 공격 방법이 왜 위험한지 간단하게 설명하면 일단 이 방법의 핵심은 공매도라는 방식의 위험성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 공매도를 통해 2000원으로 1 파운드화를 사는 과정 없이 미리 빌렸다치고 팔아놓고 나중에 파운드화가 1000원으로 떨어졌으니 차익에 해당하는 천 원을 지불하라는 방법인데 문제는 파운드화가 천 원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당하는 쪽에서 눈앞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에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죽자 사자 달려든다. 비록 영국 정부의 상황을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엔간한 곳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고 손해만 보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정확하게 말해서 이 영란은행을 공격하는 작전의 입안자는 드러켄밀러였으며 그가 입안한 계획을 검토하고 허가를 내준 이가 소로스였다. 영란은행에서의 엄청난 타격은 엄청난 성공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드러켄밀러의 작전들로 인한 손실(특히 1998년 롱텀 캐피털 파산이 직격탄이었다)이 계속되자 둘은 갈라서게 된다.



영향력


1993년 소로스가 금광을 개발하는 미국의 광산업체의 주식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나자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이 앞다퉈 관련 주식을 매수해 전 세계적으로 금이 폭등했다. 


1996년 1월 도쿄의 세미나장에 나타난 그가 "일본 주가가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한마디 하자 닛케이 주가는 폐장을 앞둔 막판 10분 동안 270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2000년 4월 퀀텀펀드가 기술주(IT버블)에 묶여 50억 달러를 순식간에 날리자 그는 "헤지펀드의 시대는 갔다"라고 선언했다. 이후에는 안전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이후에는 파생상품이나 통화 투자는 하지 않고 주식이나 채권에만 투자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리 소로스가 달라졌어요. 2010년 퀀텀펀드를 해체하고 개인재산만을 운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중국 증시를 중시하여 중국 주식(특히 공상은행과 상하이자동차)에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2015년 중국 증시 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고 2016년의 포브스 발표에서 갑부 순위 100위 밖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


물론 소로스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는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과거 그가 헤지펀드의 거물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마치 그가 독단적으로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하고, 홀로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를 금융위기(1997년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의 외환위기)로 몰아넣은 것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당시 아시아 국가들과 영국에는 수많은 문제(금융)와 경제에 거품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그러한 부분을 소로스는 간파하고 수익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의외로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는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태국 바트를 공격하여 짭짤한 수익을 올렸기에 비슷한 전략으로 대한민국 원도 공격해 봤지만 때마침 한국인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금을 쏟아내서 그냥 손 털고 나와버렸다고.. 


금융위기 때 그가 헤지 펀드계의 스타 매니저여서 특별히 부각된 점은 주의해야 할 사실이다. 실상 돈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되자 피 냄새 맡은 상어 떼처럼 미친 듯이 달려든 각국의 거대 은행, 여타 헤지펀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이들이 더 큰 혼란을 불러왔다. 


위에 서술된 대로 소로스도 인간인지라 당연히 투자에 있어서 많은 실수를 맛보았고, 기술주 거품 때는 정말 골로 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영향력 때문에 각종 창작물에서도 은근슬쩍 캐릭터를 차용하기도 한다. 


희대의 불쏘시개 작가 김진명의 소설 "하늘이여 땅이여"에서는 한국에서 주식투기[19]를 하려는 헤지펀드 매니저 딕슨의 배후자인 아서라는 인물이 있는데 사전에 그의 계획을 돕는 조지라는 캐릭터가 바로 이 사람에서 따온 듯. 그 사람의 이력이나 대화 내용을 보면 100%다. 


신이라 불린 사나이 만화책에선 조지 솔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 금융재벌이 나오는데 누가 봐도 조지 소로스 이름에서 따온 듯. 이 작품에선 악의 축같이 나오지만 정작 신디케이트라는 비밀 세계 조직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개인적인 면들


소로스는 2010년도 포브스의 발표에서 미국 부자 순위 14위를 차지했다. 동시에 2002년 비즈니스위크의 발표에 따르면 5억 3600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놓아서 6위의 기부가로 선정되었다. 


소로스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9년 자선단체 오픈 소사이어티 펀드를 설립해서 옛 동구권의 체제 전환을 위해 매년 3억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취미는 테니스이며 오랫동안 뉴욕 맨해튼의 조그만 원룸 아파트에서 살았고 재혼 후에 아내가 임신했을 때 비로소 뉴욕 5번가의 [22] 2층 맨션으로 옮겼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구설수에 오른 행동을 보면 이런 자선활동이나 검소한 생활은 다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한 언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기보다 52세나 어린 브라질 탤런트 출신의 옛 애인한테 소송을 당했는데, 옛 애인의 주장은 소로스가 뉴욕 맨해튼의 190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자기 대신 새로운 여자 친구에게 줬다고 하며, 아파트를 놓고 말싸움을 벌이던 중 소로스가 침대에서 자기 얼굴을 때리고 목을 졸라 질식시키려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물론 저 옛 애인이란 사람도 단순히 애인이었던 이유로 소로스에게 거액을 뜯어내려 하는 속물적인 목적이 보이는지라 저 아파트를 준다는 약속이나 소로스의 폭행 및 협박 등의 주장은 액면 그대로 믿긴 어렵지만, 적어도 80이 넘은 소로스의 나이에 20대의 연예인 미녀를 애인으로 두고 있었다는 것은 서양 기준으로도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고, 더구나 저런 연예인 미녀를 애인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애인을 만족시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상당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기에 평소의 검소한 생활이란 것도 언플로 꾸민 거짓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 링크 실제로도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 


미국 민주당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공화당을 지지했으나 앞 이름이 같은 부시의 삽질을 보다 못해 오바마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반이민정책을 주요 정책 골자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하여(소로스 본인이 이민 자니까)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앞서 설명한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인 최규선 씨의 주선으로 김대중과 자주 만남을 가졌으며 대표적인 거부로 알려진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마이클 잭슨과 함께 화상회의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한 바 있다.



재귀성 이론

소로스에 의하면 주식시장은 과매도와 과매수를 거쳐서 결국은 평균에 근접해나간다고 한다. 이를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 혹은 자기암시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초기 급락장에서 수익이 극대화되며, 데이트레이더들의 기본 이론도 대부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 이론은 평균 분산 그래프 같은 경제학적 측면과 군중심리와 같은 인문학적 측면이 같이 있는데, 조지 소로스가 젊은 시절에 철학을 전공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재귀성 이론은 두 가지 요소가 전제되어 있는데, 하나는 특정물에 대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특정물을 어떻게 다루려는지에 대한 조작이다. 소로스는 인식과 조작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사람들의 편향성이 더욱 강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편향성을 소로스는 '자기암시'라고 정의 내렸는데 이렇게 강해진 자기암시는 현실과 자기암시의 간극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 반전되어 사라진다고 한다. 


소로스는 파운드 공매도 이후 많은 주목을 받았고 상품이나 환율시장에서는 몇 차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곤란을 겪었다. 이에 대해 시골의사 박경철은 소로스의 성공은 성공이 확실한 차익거래에서 레버리지를 일으켜 큰 수익을 낸 데 있지, 재귀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평한 바 있다.

나무위키 출처


조지 소로스 - 투자의 귀재인가 악덕 투기꾼인가


개인 재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돈으로 20조 원 가깝게 된다. 기부 활동을 많이 했음에도 이 정도 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재산이 많음에도 워런 버핏과 마찬가지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3~5억 달러 수준의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투기적 활동을 통해 돈을 벌면서도 기부를 하고 있다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명칭도 많다. 영국 은행을 굴복시킨 사나이, 악덕 투기꾼, 헤지펀드의 대부, 통 큰 자선가 등 여러 별명이 존재한다.



한국에 병주고 약주고


우리나라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조지 소로스 때문이기도 하다. 조지 소로스는 1969년도에 처음으로 헤지펀드를 만들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아서 펀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투자 운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지 소로스는 20년간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을 보였다. 아무도 수익률 면에서는 조지 소로스를 따라올 수 없다. 투자 대상에 대한 확신이 서면 위로든 아래든 공격적인 투자를 한다. 


언제든 100억 달러 이상 자금 동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금 동원 능력도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확신이 섰다면 1차적으로 투자를 한 뒤에,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이 된다면 수십조 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 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갖고 있다. 특히 좋아하는 것이 오르는 것보다 내려갈 때 돈을 버는 공매도가 주력이다.

 

우리나라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조지 소로스 때문이기도 하다. 조지 소로스는 1969년도에 처음으로 헤지펀드를 만들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아서 펀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투자 운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지 소로스는 20년간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을 보였다. 아무도 수익률 면에서는 조지 소로스를 따라올 수 없다. 투자 대상에 대한 확신이 서면 위로든 아래든 공격적인 투자를 한다. 


언제든 100억 달러 이상 자금 동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금 동원 능력도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확신이 섰다면 1차적으로 투자를 한 뒤에,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이 된다면 수십조 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 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갖고 있다. 특히 좋아하는 것이 오르는 것보다 내려갈 때 돈을 버는 공매도가 주력이다.



대박 꿈 이뤄진 재귀성 이론이란


조지 소로스의 투자 방법을 보면 재귀성 이론이 금융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이론이다. 주가가 급등하건 급락하건 재귀성 이론은 평균에 수렴해 간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A라는 대상을 과매수를 통해 주가를 급등시키면 투자자들의 편견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런 부분을 통해서 과거에는 평범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한 편견이 바뀌고 자금 조달로 이어지면 실제적으로 기업이 좋아지는 사례를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괜찮은 기업이 있는데 공매도로 주가가 급락하면 우려가 확산된다. 그 다음 지표가 실질적으로 악화되면 패닉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일종의 작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사례를 보면 미국 사례가 될 것이다. 미국도 과거 한차례 과매도를 했고 반등을 할 때 괜찮다고 했는데 또 한번 급락하니 편견이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로 펀더멘탈을 따져보니 정말 나빠졌고 그 다음은 일종의 패닉이 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기술주 등이 1차 급락 때는 괜찮다 했지만 펀더멘탈을 보니 좋지 않았다. 그 이후 투매가 나타났다. 최근 유럽 시장이 그러한 케이스이다. 1차적으로 폭락 했을 때 다들 일시적이라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펀더멘탈이 나빠지다 보니 사람들이 서서히 패닉상태를 보이게 되고 헤지펀드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조지 소로스도 실패했다


아무리 투자의 귀재라고 하지만 조지 소로스도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했다. 손해를 보는 사례 몇 가지를 보면 94~95년 일본 엔화에 투자해서 실패를 했다. 98년 러시아 루블화 투자에도 실패했다. 당시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IT 버블이 왔을 때 첨단 기술주에 투자해서 큰 손해를 입었었다. 당시 소로스의 시대는 갔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투자 실패 사례이다. 중요한 것은 투자 실패도 투자의 대가답게 금방 잊어버린다. 손해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하루 16시간 투자 인생을 대부분 보냈다. 너무 잘 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종의 카지노도 출입이 제한당한다. 소로스도 각 국 투자 제한을 당했다. 유럽 및 동남아 등에서 기피 인물로 꼽혔다. 이런 이유로 투자가 어려워지기도 했는데 잠시 주춤할 때 2008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며 큰돈을 벌어들인 재미있는 인물이다.



은퇴 속사정 들쳐보니


조지 소로스는 개인 자산을 굴리기 위해서, 가족들의 재산만 관리하기 위해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족 자산만 하더라도 20조 원 가깝게 되는 매우 큰돈이다. 거장 투자자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규제 법안과 관련된 부분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투기성 헤지펀드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알려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 된듯하다. 이번 규제안과 관련한 부분에서 실망해서 접은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나는 전설이다 - SBS CNBC 출처





  1. 효빈이아부지 2018.08.19 16:24 신고

    조지 소로스가 이런 인물이였군요.
    나는 전설이다 시리즈중에 제일 관심있게 구독하였습니다.
    낯익은 인물도 등장하는군요. 썬코어의 최규선..... 자신의 자산(인맥)을 극대화하여 결과로 만들어낸점은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사기도 능력있는 사람이 치는것 같네요. ㅎㅎ
    조지 소로스처럼 주식을 철학적인면에서 보면 어떨까요?
    세력의 심리나, 대중들의 심리를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 Grandpassion 2018.08.19 18:39 신고

      우리나라에 병 주고 약 준다고 써있죠? ㅎㅎㅎ

      이 포스팅에 첫 번째 글을 남겨 주신 효빈아버지 님 축하드립니다.
      1등이십니다. 용기 있으십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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