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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리버모어 개인투자자의 조상 추세매매의 아버지

Grandpassion 2017. 2. 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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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리버모어 Jesse Lauriston Livermore 1877년 7월 26일 - 1940년 11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식투자계의 레전드. 가격이 오르면 사고, 내리면 공매도를 하는 추세매매의 창시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리버모어는 여기에 계속 있다간 앞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10대 초반에 5달러를 들고 보스턴으로 갔다. 보스턴의 증권 브로커 회사인 페인웨버에서 주식 호가 판을 정리하는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5세 때 주식, 상품 투자로 2천만 원을 벌었다. 사환으로 일하는 것보다 전업투자자로 활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20세에 2억 원을 벌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주가가 급락하자 지속적인 공매도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1907년에 뜬금없는 대폭락이 나타나고 공매도로 또다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리버모어는 그때 아침 시가에 공매도를 시작해서 투매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29년 여름에 시장은 초강세 분위기였다. 리버모어는 시장이 보합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공매도에 돌입했다. 다른 사람들은 리버모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에 대폭락이 이루어지고 그는 많은 돈을 벌었다. 언론에서는 리버모어의 매도 포지션이 폭락을 촉진했다고 비난했다. 


1940년 11월 28일 모든 자산을 날리고 거래소에서도 쫓겨난 리버모어는 한 호텔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그 돈을 모두 날려버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상승세인 시장에서 공매도를 해 결국엔 모든 돈을 잃은 걸로 추정된다. 


피라미딩 전략이라는 자금관리방법으로도 유명하다. 종목을 단번에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조금 매수한 후에 수익이 날 경우에만 추가로 또 조금씩 매수하는 것이다.


그는 시장이 상승장 일 때만 주식을 매수해야 하며, 하락장일 때는 공매도를 하거나 하락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가가 박스권을 유지한다면 인내하라고 말했다. 


그 역시 데이 트레이딩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고 결국 장투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썰들이 있지만 실제 제시 리버모어의 서적을 보면 신빙성이 매우 의문인 이야기이다. 


제시 리버모어는 짧은 시간(하루 안으로 여겨지는) 만에 7 ~ 8 포인트를 먹었다고 했는데, 그가 10배 레버리지를 사용했음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0.7% ~ 0.8%를 먹었다는 뜻이기 때문. 그리고 그가 혼자서 공매도로 주식 시장을 붕괴시켰다고 하는 이야기가 도는 것도 당연히 사고팔고를 반복해서 그런 거라 일반적인 가치 투자자들과 비슷한 입장을 공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업의 내부 정보라며 떠도는 얘기들은 믿지 말라고 했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 리버모어이지만 지금도 그의 삶을 추종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이 현대 주식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사람의 방식을 추구할지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하자.


사실 공매도는 위험이 큰 투자법이며 한국에서 개인에게 아예 금지되어 있다. 반면에 개인투자가의 신용, 미수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관 등의 큰 손들은 오히려 어른의 사정으로 허가된 공매도를 악용해 개미 털기에 여념이 없다. 


리버모어가 소홀했었고 미래의 투자가들이 절대 본받지 말아야 할 다른 부분은 실패를 대비한 자금관리의 부재이다. 만약 막대한 부를 거머쥔 상태에서 막대한 이익금의 몇 %만이라도 미국 국채, 실물 금, 귀금속 등의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다른 일부는 현금으로 보관해 실패를 대비했다면 파탄과 자살로 생을 쉽게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사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주식고수들이 추세매매법을 따라가다 한 번의 큰 투자 실패로 모든 자금을 잃고 자살 또는 인생파탄으로 마감하는 것은 씁쓸한 현실. 반면 주식의 위험성을 잘 아는 투자가들은 주식으로 큰돈을 벌고 이익금이 쌓일수록 은행 적금, 국채, 실물자산 등의 비중을 함께 높이고 주식 비중은 어느 선에서 제한하여 미래를 도모한다.


나무위키 출처





제시 리버모어 개인투자자의 조상 - 추세매매의 아버지


금융시장이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제시 리버모어의 투자 기법도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제시 리버모어는 개인투자자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다. 추세 매매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단돈 5달러로 시작해서 2억 달러를 번 일종의 투기꾼이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는 14세에 주식 호가판 관리를 시작했다. 15세에 수학적 감각이 워낙 뛰어나 주식 투자에 대한 매매 법칙을 익혀 사설 증권거래소에 출입하게 된다. 너무 유능했기 때문에 15세 꼬마가 출입할 때마다 돈을 벌어갔다. 심지어 사설 증권거래소 출입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 꼬마는 이곳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직감을 익혀간다.



주가의 변동성을 이용한 트레이더


제시 리버모어는 "나는 주가 변동성을 이용한 거래자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아닌 트레이더로 불리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투자자가 아니라는 비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투자하는 사람들도 올라오면 파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트레이더이다. 


그가 가장 많이 벌어들인 돈이 1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워렌 버핏도 대단한 자산가라고 하지만 사실상 개인자금이 아닌 투자의 조합을 통해서 돈을 번 것이다. 사실상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렇게 번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없다. 21세부터 본격적으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설 증권거래소와 뉴욕 증권거래소의 시스템이 달랐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못했다. 실패를 할 때마다 사설 증권거래소와 뉴욕 증권거래소를 오가며 돈을 벌었다. 


1902년 최초로 유니온퍼시픽 주식을 공매도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25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1907년 공매도 포지션을 계속 늘려갔다. 이때 주가 대폭락 시대가 도래했다. 100만 달러의 수익을 얻게 된다. 시장 투매를 촉진시킬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도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하다. 


제시 리버모어가 움직이면 시장이 움직인다는 속설도 있다. 대규모 공매도 소문이 돌면 주가가 급락을 보이고, 공매도 청산 소식이 돌면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있었다. 얼마만큼 시장에서 영향력을 떨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JP모건이 FRB 역할을 했다. JP모건이 제시 리버모어를 불러 경고까지 할 정도였다.



1929년 대공황 때 1조 원 수익


그는 1929년 대공황 때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무려 1조 원이다. 그런데 1조 원을 벌며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큰돈을 벌다 보니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고 투자원칙도 서서히 잃어가는 좋지 않은 모습도 보였다.



피라미딩 전략 - 상승 시 매수 하락 시 매도


추세 매매의 핵심은 피라미딩 전략이다. 피라미딩 전략은 주가가 올라가든 내려가든 간에 한쪽으로 방향이 잡히면 1차적으로 40% 매수한다. 그 가격을 이탈하지 않으면 올랐을 때 또 매수하고 그 평균 단가를 깨지 않으면 또 매수하는 것이다. 올라갈 때 계속 매수하고 내려갈 때 계속 매도하는 것이다.

 

외국인들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시장이 좋을 때는 꾸준히 매수하고 최근 매도 시기를 보면 내려갈 때마다 매도한다. 이 추세가 유지될 때까지는 이 피라미딩 전략이 시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전략이다. 펀더멘탈이 좋건 나쁘건 한 방향으로 추세가 잡혔을 때는 그 추세대로 피라미딩 전략을 사용하면 제시 리버모어처럼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나는 전설이다 - SBS CNBC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