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설 명절 차례상, 평상 시 기제사 제사상 차리기 홍동백서 언제부터 그랬나? 


추석 설 명절에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가문마다 문중마다 집안마다 제각기 다른 차례상 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차례상을 차릴 때, 홍동백서 조율이시 두동미서 좌포우혜 어동육서 등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이 문헌에 나와있는 규칙처럼 명절 때마다 예기 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 문헌에 나와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차례상 차리기에 이런 용어들이 나왔는지, 진짜 문헌에서는 설 추석 명절에 차례상 차리기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 JTBC 팩트체크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 어동육서?



홍동백서 - 붉은색 음식은 동쪽에,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이시 -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씨가 한 개인 순서부터 놓는다.

두동미서 -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놓아서 꼬리는 서쪽으로 가지 놓는다.

좌포우혜 - 마른 명태포 같은 포는 좌편(왼쪽), 식혜는 우편(오른쪽)에 놓는다.

어동육서 - 생선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1열 - 평상 시 기제사 때는 밥과 국, 시저(숫가락과 젓가락), 촛대 /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을 놓습니다.

2열 - 전과 산적 - 육전과 생선전, 산적, 닭고기, 떡 등을 진설합니다.

3열 - 탕 종류를 놓습니다. 탕은 물김치, 두부탕, 멸치탕, 식혜 등의 국물이 약간 있는 것입니다.

4열 - 생선과 나물 종류를 진설합니다 - 어포, 동태찜, 조기찜, 등 그리고 고사리 나물, 도라지 나물, 무 나물 등.

5열 - 대추, 밤, 감, 배, 사과, 약과, 약식, 산자, 한과 등을 놓습니다. 과일은 씨가 한 개인 순서로 놓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집안 지역 풍습에 따라서 문어나 낙지 등이 올라가도 합니다. 가풍에 따라서 진설하면 됩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유연하게 제사상 차림을 하면 되겠습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두동미서, 좌포우혜, 어동육서는 추석 설 명절 차례상, 제사상을 차릴 때 빠지지 않는 용어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들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초등학교 참고서를 보면 "홍동백서로 놓아야 한다, 따라야 한다"라고 나와있고, 국가자격증인 조리기능장 시험 문제에서도 "제상차림은 홍동백서에 따라야 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것이 출처불명의 용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제례 풍습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통해서 들어온 조상을 모시는 의식인데, 중국 송나라의 기록을 보면 주자가 쓴 유교 예법의 기준이 되는 "주자가례"를 보면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규칙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에 쓰인 "사례편람"도 마찬가지로 과일을 제일 하단에 놓는다고는 있는데 어떤 색의 과일을 놓는지 또 순서를 어떻게 놓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고기를 왼쪽에 생선을 오른쪽에 놓는 것은 있지만 "어동육서"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동육서, 조율이시, 홍동백서 이런 말들은 후대에 나왔고 예서에는 전혀 없다. 잘못된 용어다."

차례를 지내는 것이 유교에서 비롯된 것인데, 정작 유교에 관련된 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주자가례나 사례편람에서 말하는 차례상 차리기의 핵심은 "정성을 다하되 간소화 하자"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의 "퇴계문집"에서 "음식의 종류는 옛날과 지금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할 수 없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제사는 사랑과 공경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위주로 할 뿐, 가산 규모에 따라"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집안의 형편에 따라서 하라는 것이다.



정부가 조사를 할 때 "혹시 홍동백서가 있습니까, 조율이시가 있습니까? 실제로 여쭤보면 그때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도 아 그런 것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문화적 전통인 것처럼 일반화된 과정이 있었고, 그래서 역전파가 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언론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이고, 그리고 1970년대에 점점 보도가 늘었고, 1980년대에는 "제사상 진설도와 추석상차림 안내"라는 제목을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가 됐습니다. 이 때문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이 차례상 차리기에 고정된 규칙인 것처럼 잘못 인식된 측면이 있다고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 필자도 설이나 추석 또는 기제사 차례상 제사상을 진설할 때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어동육서 등을 따져서 규칙으로 진설하곤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사가 많아서 할아버지, 아버지께 설 추석 명절 제사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내용입니다. 


이런 용어들이 조선시대에 유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가문의 위세가 규칙을 만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큰 권세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고, 권세가의 제사장은 조상을 모시는 것에 대해서도 어떤 부동의 규칙이 필요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파가 된 것이 아닐까요? 


집안마다 차례상 차리는 모습이 각 기 다릅니다. 제사를 모시는 어른들 말에 또는 자신의 생각에 따르면 되겠습니다. 주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님들의 조상 모시기 핵심은 "허례허식을 버리고 마음으로 조상님을 생각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되돌아보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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